왜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그럼 그 유목은? 그건 왜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일까? 왜 병에 넣 은 편지는 해안에 당도하게 되어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바다에 그것을
내던졌던 난파선원들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고 모두 무사함을 다행으로 여기 도록 하는것일까? 여기엔 다른 한 가지 요인이 더 작용하는 거란다, 꼬마 에르나야. 비록 파도가 바닷물을 옮겨가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움직이게 되 면서 제 위치를 바꿔간다. 여기서도근본적인 것은 평형의 원리다. 물은 흐르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끊김이 없이 지구를 에워싼다. 해류들은 바 닷물을 유동의 상태로 만들면서 편지를 담은 병이 사람이 사는 지역에 당도 하게 해주며 수프가 담긴 통조림 궤짝도 외딴 섬에 도달하도록 해준다. 그래 봐야 난파선원들은 통조림을 열 캔따개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테지만 말이다. 해류는 복잡한 주제이고, 그래서 다음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해류를 따라 여행도 해볼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당신이 뵘멜 교수와 난간에 기대 서 있는 우리 배의 뱃 전으로 되돌아가도록 하자. 폭풍이 포효하며 불어치는 가운데서도 그가 아 주 태 연스럽게 훈계조의 강의를 이어가지만 당신에겐 뭐라는지 도통 들리지 가 않는다. 아마 그가 “저건 아주 유별나게 거대한 파도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 “군들은 저런 파도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뇨?”라고 하는 것도 같 다. 당신은 다른 생각으로 걱정스럽다. 앞서의 상세한 설명들에 따르자면 저 기 에 있는 저런 괴물 같은 것은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건 소름이 끼 칠 만큼 현실인 것이다. 대양 한가운데서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바닷물의 벽이 당신에게로 밀려오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축하할 일이다! 당신은 변종고 (Freak Wave)1기의 촉촉한 얼굴을 들여다보 게 된 흔치 않은 행운을 잡은 것이다. 1933년에도 높이가 34미터나 되는 그런 파도가 미국의 순양함 ‘라마포 171) 돈반성 중첩과도로 니운성 고누도. 이상가랑. (Ramapo) 호와 마주쳐 그 배를 거의 전복시키다시피 했던 적이 있었다. 괴 물 파도에 관해서는 이미 이전에도 보고한 이야기들이 알려져 있었으나 그 저 뱃사람들이 꾸며댄 모험담 정도로 치부되었다. 최근에 와서 길이가 111 미 터나 되는 호화유람선 ‘브레멘(Bremen)’ 호가 하마터면 심연 속으로 집어삼 켜질 뻔했던 35미터 급의 격랑에서 간발의 차이로 겨우 빠져나오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벽처럼 일어선 전설적인 바닷물에 대하 여 진지하게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브레멘 호는 반시간 넘게 시동이 꺼지고 40도나 옆으로 기울어진 채로 남아프리카의 앞바다에 떠 있었다.
그 사건을 가지고는 그리 오래 옥신각신하지는 않았다. 2005년이 되자 금세 더 많은 돌발사건들이 잇따르게 되었다. 2월 14일에는 거대한 파도가 사르디니 아의 서쪽에서 호화유람선 ‘보이저(Voyager)’ 호의 선교(船橋. 브리지)를 박살 내버렸다. 몇 주 지나지도 않아 플로리다의 앞바다에서는 변종파가 ‘노르웨 이의 여명(Norwegian Dawn)’ 호를 덮치며 들어와 객실 62개를 침수시키는 등, 길이가 292미터나 나가는 배는 너무 심한 타격을 입은 결과 찰스턴으로 가서 예정 에도 없던 수선을 받아야 했다.
세바스찬 융어(Sebastian Junger)가 그의 소설 폭풍에서 그처럼 거대한 괴물 파도를 묘사한 적 이 있었다. 이를 영화화한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는 그 파도가 조지 클루니 를 집어삼킴으로써 뱃사람의 신부가 될 수백만 여성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 삶과 만나는 데 돈이 들어가는 모험이란 중벌을 받을 만 도 하다. 변종파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단 몇 초만에 무(無)에서부터 생겨나 온다. 게다가 이렇다 할 파장을 지니지도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선박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 다시 말해서 원래 보통의 산더미 같은 파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그것을 편안히 오를 수 있기만 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이 에 반해 그 어떤 배라도 가파른 절벽을 정복하도록 만들어 지지는 않으며, 변종파는 대개 곧추서면서 탑처 럼 치솟는다.
독일의 어느 파도 연구가가 괴물 파도를 브레멘의 도시악사에 비유한 적 이 있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종종 여러 개의 파도가 있다가一불쑥, 껑충!一겹쳐 쌓이며 단 하나의 파도가 된다는 것을 또렷이 보여주었다. 파고 가 높고 민첩한 폭풍 파도가 갑자기 강력한 역류를 만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달려오던 움직임은 멎어버리고 파장도 급속하게 줄 어들며 뒤따르던 파도들은 번개처럼 재빠르게 포개져 쌓인다. 예를 들어 아 프리카 남동해안 앞바다인 회망봉 주변에서는 폭풍 파도들이 동쪽에서 오는 따뜻한 아굴라스 해류를 정면에서 맞으며 언제나 그 속으로파고들어가고는 하며,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케이프혼도 해류가 정체 하는 위험스런 지 역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먼바다에서 의 변종파(이는 Rouge Waves나 Sneak Wave라고도 불린다)는 10킬로 미터나 되는 거리를 나아가기까지 하며 속도도 초속 35에서 40킬로미터나 되도록 빠르다. 그러나 규모가 거대한 몇몇은 아예 수백 킬로미터가 넘게 여 행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변종파는 원칙상 불안정한 성향을 보인다. 대부 분의 것들은 오히 려 잠깐 동안만 출현하고, 따라서 겨우 몇 초간만 지속된 다. 그렇다고 해도 이 런 점은 바로 옆에 있게 되는 불운을 당한 사람에게 별 로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특히 벽처럼 일어선 바닷물에 앞서서 심연이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뱃사람들은 그것을 ‘대양 가운데 있는 구멍’이라 부르기 도 한다. 곧추 세워지며 일어나기 위해 변종파는 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끌어 들이게 되고, 그런 와중에 그처럼 푹 꺼진 통 모양을 만들어내며 배들은 꼼 짝없이 그 안으로 떨어져서 결국 뒤이어지는 파도들에 짓밟히게 되고 만다. 배들이 간신히 거기서 다시금 벗어나왔다고 해도, 뒤이어 반갑지 않은 것들 이 불쑥 찾아오게 된다.
특히나 못된 괴물 파도의 변종들이 바로 그것인데, 이들은 붙임성 있는 여운을 남기는 ‘세 자매’라는 명칭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첫 번째 자매부터가 벌써 완연한 변종파인데다, 두 번째 자매도 파장 이 짧기 때문에 바짝 뒤따라온다. 아주 대단한 행운이 있다면 이번에도 충돌 에 맞서게 되겠지만, 그냥 세 번째 자매에 대항한다고 여겨질 뿐이고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우르트라든가 베르단디, 스쿨트 같은 게르만의 여신들 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우주목의 그늘에서 운명의 실을 잣는 장면이 어 쩔 수 없이 떠올려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영원히 살 수도 있을 텐데. 스쿨 트가 실을 싹둑 끊어버 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나쁜 여자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비단 물마루들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의 짧고 깊 숙한 고랑들도 문제다. 중간 크기의 컨테이너선박 정도라도 때로는 이런 고 랑 속으로 심하게 휘어져 들어가서 동강이 나고는 한다. 물고랑이야말로 짜 장 덫이다. 우리가 파고를 말할 때는 그것을 함께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파도의 3분의 2는 해수면 위에 있는 것이지만 나머지 3분의 1 은 해수 면 아래에 있다. 30미터짜리 파도로 어림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10미터나 되는 심연 속으로 뚝 떨어져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전에 수영장에서 10미터 다이빙 도약대 위에 서 보고 또 다른 큼지막한 수조가 있음을 나타내 는 파란색의 표시를 눈여겨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심연의 규모를 아주 잘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변종 파도는 ‘하얀 벽’이라는 승앙심을 불러일으키는 명칭을 지닌 다. 이것은 전열이 수 킬로미터나 되도록 구축되며, 위쪽에 거품을 뒤집어쓰 고 부서지는 파도가 상상도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덩치로 중압감을 주는가 하면 또 그만큼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그 앞면에서는 물거품이 아래 로 흘러내린다. 융어의《폭풍〉에 나왔던 불운한 범선 ‘안드레아 게일 호,가 바로 그런 벽에 부딪치며 전복되어 종말을 맞는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그 배 가 대 리석처 럼 만질만질한 파도의 앞 사면을 바동거리며 기어오르는 가망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지 클루니가 나중에〈오션스 일레븐〉에서 주연을 맡은 걸 보면 거기서 살아남기는 한 모양이다. 이에 반해 안드레아 게일 호의 승무원에 관해서는 그 어떤 흔적도 남은 것이 없다. 흔히 슬그머니 허물없이 다가와서 배를 낚아채 전복시켜버 리는 육중하고 번들거 리는 거대파도를 말 하는 근사한 놈(Kaventsmann) 역시 동시대의 나쁜 이웃인 것이다. 덧붙 이자면 이런 파도 이름은 수도원 담 너머의 선량한 생활에 신세를 진 것이다. 뚱뚱하고 영양상태가 좋은 수도사를 예전에는 수도원분(Konventsmiinner)이 라 불렀다.